29화. 배우는 사람 – 춤추며 그러모은 문장들

안무가인 엠마누엘 사누는 매주 수요일 한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춤을 가르쳐준다. 그는 가르치는 사람. 나는 그의 몸짓을 뚫어져라 관찰하고, 핵심을 포착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모방하며 수행한다. 나는 배우는 사람. 그렇다면 그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을까. 그처럼 날렵하고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론적 기술? 춤이라는 장르를 관통하고 있는 과거와 현시대의 화두? 만딩고 춤이 속해 있는 문화권의 예술과 가치관? 글쎄. 내가 느끼기엔 그는 모든 것을 가르치면서도 동시에 가르치지 않기도 한다. 말장난이 아니다.

2시간 남짓한 워크숍 동안 나는 그가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것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가 발견하는 사실은 단 한 가지뿐이다. ‘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춤을 췄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대에 섰고, 25년여간 안무가와 무용수로 활동해왔다.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몸 쓰기라면 젬병이라고 생각해왔다. 누가 나를 무대 위로 끌어당기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우연히 20대에 춤의 세계에 풍덩 빠져서, 뽀르륵 가라앉다가 다시 헤엄치기를 반복하며 30대를 보내는 중이다. 춤과 함께한 시간은 햇수로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누군가 그에게 춤에 대해 물으면 그는 가장 반짝이는 눈빛으로 응한다. 입꼬리가 먼저 올라가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누군가 나에게 춤에 관해 물으면…글쎄. 나는 하고 싶은 말과 할 수 없는 말이 뒤엉켜 적당히 얼버무리고 만다. 그러니까 좋긴 한데, 저에게 중요하긴 한데, 해봐야 하는데, 읔 말로 어떻게 설명한담. 단순히 표면적인 이력과 경험을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어떤 몸짓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 동일한 춤을 추더라도 그의 아름다움은 그의 것이다. 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그의 몸을 모를 것이고, 그 역시 나의 몸을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가 발생한다. 

그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나는 순간순간 착각하고 오해한다. 아마도 내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그는 잠시 나의 몸이 되었다고 가정하며 움직임의 디테일을 끌어낸다. 이것은 왜 이런 느낌이고 저것은 어찌하여 저런 분위기를 풍기는 것인지 몸소 나의 몸처럼 움직이며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잠깐 그의 몸이 되었다고 상상하며 그의 움직임을 나의 몸에 담는다. 우리는 서로를 포함하고 있는 풍경을 내가 아닌 타인의 몸으로 바라본다. 그 순간, 각자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온 이해를 초월하는 세계의 문이 열린다.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는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와 신뢰에 있다. 그는 모두의 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안전한 공간이라는 확인과 단단한 신뢰를 바탕으로, 춤추는 모두는 저마다 고유의 방식으로 오해하고 착각하고 모르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타인과 함께 춤춘다는 것은 이 세계에 타인이 존재한다는 감각을 배우는 것에 가깝다. 그 배움이 짙어지고 축적될수록 우리는 더욱 가깝게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너는 내가 될 수 있고, 나는 네가 될 수 있다’는 보편적인 진실을.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진실은 말로는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



글 | 보코